유럽의 SW 업체 중 유일하게 미국 SW 업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시장 1위 업체인 SAP.
최근 SAP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것으로 유명한 SAP가 2007년 10월 초 68억 달러에 비즈니스 분석 솔루션 업체인 비즈니스오브젝트(BO)를 인수한데 이어 2010년 5월 중순엔 58억 달러를 들여 DB와 모바일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이베이스 등을 과감히 인수했다. 인수합병은 미국 SW 업계가 즐겨쓰는 방식이었다. SAP와 친구였다가 칼을 들이댄 오라클의 경우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피플소프트, J.D 에드워드 같은 전사적자원관리(ERP) 업체를 인수했고, 고객 관계관리(CRM) 업체인 시벨도 품에 안았다.
그에 비해 SAP는 ERP를 기반으로 자사가 하나씩 하나씩 직접 개발해 제공해 왔다. 완벽한 통합 전략을 위해서는 이런 방식이 고객에게 유리하다는 진단이었다. 이런 방식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또 한편 시장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려는 고객들은 SAP의 제품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거나 전문 업체를 활용해야 했다. 통합 이슈가 있었고 이 시장은 고스란히 웹스피어를 보유한 IBM에게 돌아갔다.
이랬던 SAP가 BO와 사이베이스를 인수할 때 시장과 고객은 모두 놀랐다. SAP도 지갑을 열 때가 있다니 하면서.
국내에서 SAP는 전사적자원관리(ERP), 고객관계관리(CRM), 공급망관리(SCM), 제품수명주기관리(PLM), 공급자관계관리(SRM),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 지속가능경영(Sustainability) 솔루션 등을 제공하는 업체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고 있다. ERP 솔루션 들을 넘어 분석과 DB, 모바일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대천 SAP코리아 상무는 “미국에서 SAP는 ERP뿐만 아니라 모바일과 DB, BI 분야를 담당하는 회사”라며 “전체 매출을 10으로 봤을 때 ERP 관련 매출이 4, CRM·SCM 등 비ERP 매출이 3, 비즈니스오브젝트와 사이베이스 등 신규 솔루션 매출이 3 정도 차지한다”라고 설명했다.
BO 인수에 너무 과한 비용을 지불한 것 아니냐는 세간의 평가가 무색해 질 정도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사이베이스 인수를 통해 짐작했듯이 최근 엔터프라이즈 모빌리티를 위한 핵심 무기도 확보했다. DB도 마찬가지.
정대천 상무는 “최근 화두인 클라우드 컴퓨팅 ‘온디맨드’와 사이베이스 인수를 통해 강화한 모바일 ‘온디바이스’ 분야에도 많은 투자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클라우드 컴퓨팅과 모바일 컴퓨팅의 발전으로 애플리케이션의 활용 범위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며 “이를 위해 데이터분석과, 지속가능경영,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컴포짓 애플리케이션 분야에 보다 많은 역량을 쏟을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전통적인 수익원은 여전히 가져가면서 동시에 서비스 형태로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려는 고객들이나 기존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을 모바일 환경에서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확장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모바일과 클라우드에 대한 SAP의 전략은 다른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업체와 유사하지만 이 분야 1위인 만큼 기존 ERP와 CRM, SCM 고객들이 모바일 환경에서도 SAP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사이베이스의 언와이어드 플랫폼(SUP)과 모바일 디바이스 관리(MDM)인 아파리아 등의 고객 확보에도 상당히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SAP는 사이베이스를 인수하면서 우선적으로 사이베이스의 모바일 제품군을 자사의 기존 고객들에게 제공해 모바일 환경에서도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한국사이베이스의 한 관계자도 “모바일엔터프라이즈애플리케이션플랫폼(MEAP)이 SAP의 ERP 고객들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인수합병을 통해 분석과 모바일, DB 기술을 확보했지만 SAP는 독자적으로 분석 분야의 무기도 선보였다. 바로 국내 인메모리 기술을 활용한 하나(HANA)다.
정대천 상무는 “이제 기업은 단순 계산을 처리하는 DB만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를 위해 SAP는 시장에서 인메모리 컴퓨팅 테크놀로지라는 새로운 컨셉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SAP는 최근 HANA 어플라이언스 소프트웨어’를 출시했다. SAP HANA 어플라이언스 소프트웨어는 SAP 인메모리 컴퓨팅 기술이 집약된 제품으로, 기업은 HANA를 통해 실시간으로 방대한 분량의 정교한 정보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운영을 할 수 있으며, 동시에 분석할 수 있다고 SAP는 설명했다. 이 제품은 유연하고 다재다능한 인메모리 어플라이언스로 SAP 파트너가 제공하는 하드웨어에 SAP 소프트웨어 컴포넌트를 최적화해 결합했다.
정대천 상무는 “사실상 기업은 HANA를 통해 모든 데이터 소스로부터 거래와 분석 데이터를 즉각적으로 검색하고 분석 가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HANA를 통한 데이터 분석 시장에 나선 SAP는 더 나아가 기존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의 패러다임도 바꾸기 위해 나섰다.
글로벌 금융 위기와 실물 경기 침체로 기업들이 철저히 생산성과 직결되고 투자대비효과(ROI)를 보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 효율화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SAP가 인수합병과 새로운 신무기로 산토끼만 잡으러 다니는 것은 아니다. 집토끼들도 단단히 잡아두고 있다.
기업 애플리케이션 분야를 살펴보면 오랫동안 ERP를 사용 해왔고, 최신 기능을 도입한 기업을 중심으로 그 동안 소홀했던 PLM 프로세스 강화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 CRM 분야도 소비자의 소셜네트워크, 모바일 디바이스 사용 추세가 증가하면서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SAP는 서비스지향아키텍처(SOA) 기술을 이용한 컴포짓 애플리케이션(CA)개발 방식을 사용해 개별 기업의 특수한 사항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컴포짓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고객이 그때그때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을 손쉽게 조립하고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고자 한 것. 자바 프로그램을 전격적으로 지원하면서 개발자 풀을 빠르게 확대했다. 그간 SAP ERP를 위해서는 아밥(ABAP)이라는 특화된 언어를 사용해야 했는데 이를 개방한 것으로 전세계 자바 개발자들을 향해 SAP의 우군이 돼 달라고 요청하고 나서고 있다.
정대천 상무는 “이제는 ERP, CRM, SCM 등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장벽의 의미가 없어졌다”며 “비즈니스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고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가져다 쓰고 만들기를 원한다”고 컴포짓 애플리케이션 등장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컴포짓 애플리케이션은 SAP가 주력하고 있는 애플리케이션 개발방법으로 애플리케이션 통합 플랫폼인 비즈니스프로세스플랫폼(BPP)를 통해 기존 코딩 방식이 아닌 서비스 컴포넌트의 조합 방식을 제공한다.
정대천 상무는 “SAP는 130개에 달하는 프로세스와 3500개에 달하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며 “고객들은 이 중 원하는 프로그램과 프로세스를 가지고 컴포짓 애플리케이션 해 자사 사업장에 맞는 비즈니스프로세스플랫폼을 구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도입 후 자사 실정에 맞게 수정을 하면서 손실되기 쉬운 표준화와 거버넌스를 지켜내면서 유연성과 편리성을 보장하겠다는 입장인 것.
고객들은 컴포짓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패키지 솔루션과 자체개발의 장점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은 SAP BPP를 도입, 컴포짓 애플리케이션 개발환경을 구축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처음에는 패키지 솔루션을 도입한 뒤, 자사 서비스에 맞게 자체 개발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자체 개발한 부분이 누적되면서, 약 50명의 달하는 IT인력이 이 유지보수에만 신경써야 하는 상황에 부딪혔다. 한국수력원자력으로서는 이 부담이 상당했다.
정대천 상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컴포짓 애플리케이션이 사용됐다”며 “한국수력원자력은 기존 클라이언트/서버(CS) 기반의 계측설비교정이력 시스템을 웹 기반으로 전환하면서 SAP BPP기반 CA 방식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SAP의 이런 기업 변화는 좋은 성과로 나타났다. 국제회계기준(IFRS)으로 2011 회계연도 상반기(1월1일~6월30일) SAP의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17%의 증가를 보이며, 63억2400만 유로 달러를 기록했다.
이중 소프트웨어 부문 수익은 13억8500만 유로달러로 전년동기대비 26%나 성장했고, 소프트웨어 지원 서비스는 49억600만 유로달러 매출을 올리며 전년동기대비 17% 성장했다.
또 SAP 상반기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새로운 소프트거래량이 전년동기대비 34% 증가한 2만 6896건을 기록했다.
상반기 SAP의 실적을 두고 IDC와 가트너 등 유명 시장조사기관들도 “SAP의 성장을 주목할 만하다”며 향후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1972년, 독일 발도루프에서 5명의 직원으로 출발했던 SAP는 현재 전세계 5만 3513명의 임직원을 둔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분야 1위 기업이 됐다.
30년도 채 안된 SAP가 이처럼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정대천 상무는 “현재 전세계 120여 개국 9만 5000개 이상의 기업이 SAP솔루션을 사용하고 있다”며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SAP의 경영 철학이 오늘날의 SAP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SAP의 변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해 하반기 SAP가 보여줄 성과가 더 기대된다.